⌂ 말과 글의 집.
나와 여러 사람의 말과 글을 가리어 모아 엮음.
가호
250101 11:02
집 문 앞에서 열쇠를 어디에다 뒀더라 가방을 뒤적이고, 건조해진 피부에 물을 끼얹어 포개진 잠옷을 꺼내 입기 전까지, 그것에 도달하기까지 비일상일 거다. 아쉬운 마음이 된다. 그럼에도 쓰는 것은 새해의 시작이자, 운 좋게 그 시작을 도시 간 이동으로 연장하고 있으며, 장면을 그만한 단어로 맺고 싶기 때문이다. 선형에 서서 비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재료로 다시 역사를 가늠하고, 시선을 좇고. 감기는 천천히 나으면 된다만 기차 알레르기는 심해진 것 같다. 안타까운 기억이 되고 새로운 용기가 될 거다. 소중히 할 것을 약속하며,
묵념
240928 01:28
이웃집 가스 누출 때문이든, 그래서 열어 둔 창 밖에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음 때문이든 쉽게 잠들 수 없는 날이었다. 미세한 진동. 행위예술가는 말했다. 무언가를 우선순위에 두는 용기에 관하여,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에 관하여.

오래전 읽은 책에서, 현대의 시간은 원자화되어 과거–현재–미래로 연결되지 않고 무수한 현재로서만 존재한다 했다. 더는 점과 점 사이를 잇지 않아도 된다니 큰 수고를 덜었다. 잇고 싶지 않은, 혹은 이을 수 없는 점들이 많은 탓이다.
나무
240908 22:58
나무는 미술관과 주차장 사이에 서 있다. 키가 큰 바람에 가지가 닿는 높이마다 잎이 다–다른 색으로 비친다. 가만히 있으니 내가 가서 안아야 하지만, 안기는 기분도 드는 법이다. 껍질이 거칠어서 올이 뜯기는 듯 몸이 당겨지는 긴장이 나쁘지 않았다.

문득 이번 학기에 듣는 크리틱 수업 내용의 일부가 떠오른다. 브라이언 브레이보이에 따르면 미학이란: 공동체가 선하고, 진실하며, 옳고, 아름답다고 결정하는 것.
이곳은
240815 03:48
흩어진 글을 모으는 공간이다. 글은 대부분 메모 어플에, 가끔 보낸 편지함에, 어쩌다 공책에 있다. 이것을 다듬어 말하기·듣기·쓰기·읽기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업로드한다. 분류는 거칠다. 글이 더 쌓여 흐릿한 기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정 기능들이 크롬에서 묘하게 늦게 적용되는데 왜 그런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래도 위계와 그리드라 좋다. 무엇이 될지 모르면서, 모인 것들이 어떤 면을 내비치게 될지 미지수인 상태라 좋다.
아무개, 아무개 씨, 아무개 님
240810 03:54
자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 여름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는 끝에,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이름을 열거할 거란 걸 안다. 입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사람, 어떤 날을 뒤적이느라 눈동자를 떨어트리는 사람. 나는 이러저러한 말을 가만히 듣다가 누군가 반짝일 때 같이 반짝였다. 그냥 읽히는 글을 쓰는 날이면 좋아요. 옷걸이에 안타까운 걸 걸어두고 밖으로.
유가족
240731 07:41
내 이름이 장례 안내문 유가족란에 쓰여있었다. 어떤 말은 경험해서만이 뜻이 온전해진다. 유가족이란 장례식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눈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모르는 순간의 당신이 그에게 남아있다. 조각들에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꿈1
240722 18:04
당신과 나는 아주 오랜만이다. 찰랑이는 흰 벽지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있다. 아래, 발목이 보일 만큼의 틈이 있다. 장난스레 당신의 발끝에 내 발끝을 갖다댄다. 놀랍지 않다. 당신은 내가 나임을 알아차린다. 놀랍지 않다. 슬쩍 가파른 입꼬리. 나눈 시간은 나누지 않은 시간을 초월한다. 다행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