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에 이사 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그 사이 이곳의 도메인이 만료된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안 남은 박스 몇 개, 그 짐을 풀 듯 이곳에 다시 글을 쓴다.
거실은 삼각형 꼴이다. 한쪽 창가에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두고, 룸메이트 S와 나는 기찻길을 향해 앉는다. 열차 소음과 함께 탑승객 얼굴들이 지나간다. 안팎이 모호한 것이 마음에 든다.
졸업에 대한 소회를 적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가올 미래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 좋겠다.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되레 두루뭉술한, 설익은 문장들을 늘어놓게 될 것 같아서다. 우리가 주고받은 유무형의 것들이 많았음을 기억하고, 지난 시간을 머리맡에 잠깐 괴어두자.
유월, 서울에서 만난 Y가 나를 기록해 주었다.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기에, 가끔은 진심으로 미워하기도 하고, 그것이 자신을 잡아먹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법과 그러면서도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는 법을 익히는 시기를 보냈고, 또 보내는 중인 듯하다.’
⌂ 말과 글의 집.
나와 여러 사람의 말과 글을 가리어 모아 엮음.
나와 여러 사람의 말과 글을 가리어 모아 엮음.
상자에는 뜸부기 사진이 인쇄된 엽서, 나와 S가 만든 책 몇 권, 인화된 동물 사진과 버스 모양의 파란 틴케이스가 있다. 엽서에 닻 내리는 것처럼, 뭉툭한 사인펜으로 글이 적혀 있다. 선영이의 모든 시선과 손끝의 온기가 담긴 고운 자취들을 작업하는 남은 평생 오래도록 기억할게.
Y는 이곳이 반쯤 열린 문이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표현이라 남기기로 했다. 최근 함께 책을 읽고 있는데, 책에 대한 책이라 Y에게 듣게 되는 것이 많아 즐겁다. 텍스트가 이미지의 각주가 되는 것, 이미지가 텍스트의 도판이 되는 것. 이러한 관계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것을 신중하게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상기하게 되었다.
언니는 회화가 빨래 같은 거라 했다. 편집된 시간을 모으면 어떤 궤적이 보인다고. 이미 그려진 이미지에 천천히 뜻이 맺히기도 한다고 했다. 마시다 만 밀키스와 피우다 만 연초가 종이컵에서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