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과 글의 집.
나와 여러 사람의 말과 글을 가리어 모아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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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땅이 행복했으면, 지구를 두른 지구인, 멀리 외계인까지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만들어내는 무언가가 끌어오는 질감과 향기, 시간에 좋음을 담는 것. 직접적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에 이로운 것, 그런 방향으로 몸이 기우는 것. 그래서 부끄러운 마음은 조각이라 여겨질 크기의, 무수하고 아득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 그렇게 천천히 빛과 열을 내는 것. 기도 같은 글을 쓰다 잠에 들었다.
아티스트북 연구자 조해너 드러커(Johanna Drucker)는 전방위적 디지털 시대에도 책이 주제적·물리적 생명력을 잃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전통적 형태의 외견상 단순성, 그리고 제한된 배치 가능성 안에서 각 요소가 관계 맺으며 생산하는 무한한 복잡성이 팽팽한 긴장 상태”를 이루는 데 있다고 말한다.
아나소피 스프링어, 에티엔 튀르팽 편, 『도서관 환상들』, 김이재 역, 만일(2021), p. 21
공공 도서관은 유무형의 자료와 매체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비영리 시설이다. 시장성 있는 재화를 공공재로 전환할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지적인 교류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공공성을 창출한다. 독서와 사색이라는 근본적으로 사적인 정신 활동을 위해 공공의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역설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그리하여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한다.
같은 책, p. 37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식이 지식 생산 과정에서 책이 지닌 수행적 기능을 강화했다는 사실이다. 동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의 수행은 다름 아닌 큐레이토리얼을 떠올리게 한다.(…) 바르부르크 도서관에서 책은 단지 연구의 기반이 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신중히 설계된 상호근접성을 바탕으로 미학적인 힘을 펼치는 사물로, 마치 큐레이터가 배치해 놓은 전시물과 같았다.
같은 책, p. 65–67
아나소피 스프링어, 에티엔 튀르팽 편, 『도서관 환상들』, 김이재 역, 만일(2021), p. 21
공공 도서관은 유무형의 자료와 매체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비영리 시설이다. 시장성 있는 재화를 공공재로 전환할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 지적인 교류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공공성을 창출한다. 독서와 사색이라는 근본적으로 사적인 정신 활동을 위해 공공의 플랫폼을 제공한다는 역설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그리하여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 같은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한다.
같은 책, p. 37
바르부르크의 연구 방식이 지식 생산 과정에서 책이 지닌 수행적 기능을 강화했다는 사실이다. 동시대적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의 수행은 다름 아닌 큐레이토리얼을 떠올리게 한다.(…) 바르부르크 도서관에서 책은 단지 연구의 기반이 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신중히 설계된 상호근접성을 바탕으로 미학적인 힘을 펼치는 사물로, 마치 큐레이터가 배치해 놓은 전시물과 같았다.
같은 책, p. 65–67
새집에 이사 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그 사이 이곳의 도메인이 만료된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안 남은 박스 몇 개, 그 짐을 풀 듯 이곳에 다시 글을 쓴다.
거실은 삼각형 꼴이다. 한쪽 창가에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두고, 룸메이트 S와 나는 기찻길을 향해 앉는다. 열차 소음과 함께 탑승객 얼굴들이 지나간다. 안팎이 모호한 것이 마음에 든다.
졸업에 대한 소회를 적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가올 미래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 좋겠다.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되레 두루뭉술한, 설익은 문장들을 늘어놓게 될 것 같아서다. 우리가 주고받은 유무형의 것들이 많았음을 기억하고, 지난 시간을 머리맡에 잠깐 괴어두자.
유월, 서울에서 만난 Y가 나를 기록해 주었다.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기에, 가끔은 진심으로 미워하기도 하고, 그것이 자신을 잡아먹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법과 그러면서도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는 법을 익히는 시기를 보냈고, 또 보내는 중인 듯하다.’
거실은 삼각형 꼴이다. 한쪽 창가에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두고, 룸메이트 S와 나는 기찻길을 향해 앉는다. 열차 소음과 함께 탑승객 얼굴들이 지나간다. 안팎이 모호한 것이 마음에 든다.
졸업에 대한 소회를 적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가올 미래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 좋겠다.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되레 두루뭉술한, 설익은 문장들을 늘어놓게 될 것 같아서다. 우리가 주고받은 유무형의 것들이 많았음을 기억하고, 지난 시간을 머리맡에 잠깐 괴어두자.
유월, 서울에서 만난 Y가 나를 기록해 주었다.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기에, 가끔은 진심으로 미워하기도 하고, 그것이 자신을 잡아먹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법과 그러면서도 최대한 가까이 다가서는 법을 익히는 시기를 보냈고, 또 보내는 중인 듯하다.’
안녕, 내가 쓰는 글의 다수는 안녕으로부터 시작한다.
읽는 이를 두고 쓴 글뿐 아니라 그 외에서도 먼저 안녕을 건네는 까닭은, 문장을 대하는 것은 언제나 지극히 개인 단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향하는 눈 아래, 순식간에 음가가 되길 자처하는 글자는 근육에 긴장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글쓰기는 그래서 문장과 읽는 이의 몸, 두 사이 공간을 빚는 일. 언어가 물질화하는 순간 혹은 그 이전부터 쓰는 몸과 읽는 몸은 준비한다.
이미 부유하고 있는 단어를 몇 번의 해루질로 가려내는 것, 그 사이의 이음. 대상을 부연 배경에서 따로 떼어냄으로써 새로 발생하는 모호함, 불완전하고 나란한 결과값.
그런 양가적 안녕,
글의 다수는 안녕으로부터 시작한다.
읽는 이를 두고 쓴 글뿐 아니라 그 외에서도 먼저 안녕을 건네는 까닭은, 문장을 대하는 것은 언제나 지극히 개인 단위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향하는 눈 아래, 순식간에 음가가 되길 자처하는 글자는 근육에 긴장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글쓰기는 그래서 문장과 읽는 이의 몸, 두 사이 공간을 빚는 일. 언어가 물질화하는 순간 혹은 그 이전부터 쓰는 몸과 읽는 몸은 준비한다.
이미 부유하고 있는 단어를 몇 번의 해루질로 가려내는 것, 그 사이의 이음. 대상을 부연 배경에서 따로 떼어냄으로써 새로 발생하는 모호함, 불완전하고 나란한 결과값.
그런 양가적 안녕,
글의 다수는 안녕으로부터 시작한다.
상자에는 뜸부기 사진이 인쇄된 엽서, 나와 S가 만든 책 몇 권, 인화된 동물 사진과 버스 모양의 파란 틴케이스가 있다. 엽서에 닻 내리는 것처럼, 뭉툭한 사인펜으로 글이 적혀 있다. 선영이의 모든 시선과 손끝의 온기가 담긴 고운 자취들을 작업하는 남은 평생 오래도록 기억할게.
집 문 앞에서 열쇠를 어디에다 뒀더라 가방을 뒤적이고, 건조해진 피부에 물을 끼얹어 포개진 잠옷을 꺼내 입기 전까지, 그것에 도달하기까지 비일상일 거다. 아쉬운 마음이 된다. 그럼에도 쓰는 것은 새해의 시작이자, 운 좋게 그 시작을 도시 간 이동으로 연장하고 있으며, 장면을 그만한 단어로 맺고 싶기 때문이다. 선형에 서서 비선형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재료로 다시 역사를 가늠하고, 시선을 좇고. 감기는 천천히 나으면 된다만 기차 알레르기는 심해진 것 같다. 안타까운 기억이 되고 새로운 용기가 될 거다. 소중히 할 것을 약속하며,
그런 때라 어려운 시집이다. 1부 첫 시 첫 구절을 옮기는 내가 우습다. 「긴 초들」.
타는 냄새.
모든 것은 빛에 대한 정보의 빈약에서 비롯된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솟고 다르게 깎이는 얼굴처럼
그중 몇 개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김연덕, 「긴 초들」, 『재와 사랑의 미래』, 민음사(2021), p. 7
타는 냄새.
모든 것은 빛에 대한 정보의 빈약에서 비롯된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솟고 다르게 깎이는 얼굴처럼
그중 몇 개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김연덕, 「긴 초들」, 『재와 사랑의 미래』, 민음사(2021), p. 7
되돌아보니 우리는 아마도 과도하게 열정적인 해석을 하는, 즉 예술가와 경쟁하려고 시도하는 잘못을 여기서도 범했던 듯하다. 그런 접근법은 예술이 책을 통해 스스로 이야기하게 두기보다 책 자체를 예술품으로 바꾸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
과잉 해석을 인지하는 게 반드시 일종의 실현 불가능한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은) 객관성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작가에 대해 2차적인 짐작을 피하는 사려 깊은 접근법을 의미한다. 내용과 자료를 균형 있게 해석하고 결합하면, 결과물은 부분의 합보다 더 훌륭할 수 있다. 자르고 붙여서 모방하기보다는, 일종의 우아한 연금술로 주어진 자료를 변형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제임스 고긴, 「마타클락 콤플렉스: 재료, 해석, 디자이너」, 『책 형태에 관한 책』, 사라 드 본트, 프레이저 머거리지 편, 김현경 역, 안그라픽스(2023), p.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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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 해석을 인지하는 게 반드시 일종의 실현 불가능한 (그리고 바람직하지 않은) 객관성을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작가에 대해 2차적인 짐작을 피하는 사려 깊은 접근법을 의미한다. 내용과 자료를 균형 있게 해석하고 결합하면, 결과물은 부분의 합보다 더 훌륭할 수 있다. 자르고 붙여서 모방하기보다는, 일종의 우아한 연금술로 주어진 자료를 변형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제임스 고긴, 「마타클락 콤플렉스: 재료, 해석, 디자이너」, 『책 형태에 관한 책』, 사라 드 본트, 프레이저 머거리지 편, 김현경 역, 안그라픽스(2023), p. 40–41
이웃집 가스 누출 때문이든, 그래서 열어 둔 창 밖에서 들리는 오토바이 소음 때문이든 쉽게 잠들 수 없는 날이었다. 미세한 진동. 행위예술가는 말했다. 무언가를 우선순위에 두는 용기에 관하여, 그리고 그것이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에 관하여.
오래전 읽은 책에서, 현대의 시간은 원자화되어 과거–현재–미래로 연결되지 않고 무수한 현재로서만 존재한다 했다. 더는 점과 점 사이를 잇지 않아도 된다니 큰 수고를 덜었다. 잇고 싶지 않은, 혹은 이을 수 없는 점들이 많은 탓이다.
오래전 읽은 책에서, 현대의 시간은 원자화되어 과거–현재–미래로 연결되지 않고 무수한 현재로서만 존재한다 했다. 더는 점과 점 사이를 잇지 않아도 된다니 큰 수고를 덜었다. 잇고 싶지 않은, 혹은 이을 수 없는 점들이 많은 탓이다.
나무는 미술관과 주차장 사이에 서 있다. 키가 큰 바람에 가지가 닿는 높이마다 잎이 다–다른 색으로 비친다. 가만히 있으니 내가 가서 안아야 하지만, 안기는 기분도 드는 법이다. 껍질이 거칠어서 올이 뜯기는 듯 몸이 당겨지는 긴장이 나쁘지 않았다.
문득 이번 학기에 듣는 크리틱 수업 내용의 일부가 떠오른다. 브라이언 브레이보이에 따르면 미학이란: 공동체가 선하고, 진실하며, 옳고, 아름답다고 결정하는 것.
문득 이번 학기에 듣는 크리틱 수업 내용의 일부가 떠오른다. 브라이언 브레이보이에 따르면 미학이란: 공동체가 선하고, 진실하며, 옳고, 아름답다고 결정하는 것.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을 단계로 나눈다면 첫 단계는 차이를 감지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뭔가 달라 보이는 느낌,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이상함. 어쩌다 눈에 띈 작은 차이는 ‘그것’을 그것 아닌 모든 것들로부터 떠내어 흐릿하던 세상을 대상과 배경으로 선명하게 구분하여 인식하게 만든다. 취향과 사랑 같은 편향적인 감정은 그렇게 차이가 벌린 틈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김동신, 신연선, 정세랑, 『하필 책이 좋아서』, 북노마드(2024), p. 94
디자인 저술가 엘런 럽튼(Ellen Lupton)은 「책의 몸」이라는 글에서 책과 타이포그래피 관련 용어에 몸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은 글쓰기가 신체의 확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같은 책, p. 95
김동신, 신연선, 정세랑, 『하필 책이 좋아서』, 북노마드(2024), p. 94
디자인 저술가 엘런 럽튼(Ellen Lupton)은 「책의 몸」이라는 글에서 책과 타이포그래피 관련 용어에 몸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은 글쓰기가 신체의 확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같은 책, p. 95
생각해 보면 쓰기에 능한 사람들이 말하기에 능할 수도, 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 재밌다. 머릿속이 빠른 냇물처럼 흐르는 이도 있고, 고인 것을 오래 들여다보는 이도 있는 게 아닐까?
김동신, 신연선, 정세랑, 『하필 책이 좋아서』, 북노마드(2024), p. 37
김동신, 신연선, 정세랑, 『하필 책이 좋아서』, 북노마드(2024), p. 37
Y는 이곳이 반쯤 열린 문이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표현이라 남기기로 했다. 최근 함께 책을 읽고 있는데, 책에 대한 책이라 Y에게 듣게 되는 것이 많아 즐겁다. 텍스트가 이미지의 각주가 되는 것, 이미지가 텍스트의 도판이 되는 것. 이러한 관계의 아름다움과 복잡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것을 신중하게 조율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상기하게 되었다.
흩어진 글을 모으는 공간이다. 글은 대부분 메모 어플에, 가끔 보낸 편지함에, 어쩌다 공책에 있다. 이것을 다듬어 말하기·듣기·쓰기·읽기의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업로드한다. 분류는 거칠다. 글이 더 쌓여 흐릿한 기준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특정 기능들이 크롬에서 묘하게 늦게 적용되는데 왜 그런 건지 도통 알 수 없다. 그래도 위계와 그리드라 좋다. 무엇이 될지 모르면서, 모인 것들이 어떤 면을 내비치게 될지 미지수인 상태라 좋다.
자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 여름에 만난 사람들을 떠올린다. 나는 끝에,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이름을 열거할 거란 걸 안다. 입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사람, 어떤 날을 뒤적이느라 눈동자를 떨어트리는 사람. 나는 이러저러한 말을 가만히 듣다가 누군가 반짝일 때 같이 반짝였다. 그냥 읽히는 글을 쓰는 날이면 좋아요. 옷걸이에 안타까운 걸 걸어두고 밖으로.
더운 날 S와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인디비주얼 섹션을 관람하였다. 작가 아나 바즈 인터뷰 발췌문 한글 번역.
실험영화는 영화의 미래를 향하기 때문에 영화의 기원으로 되돌아간다. 영화가 그 자체의 구조를 해체, 파괴, 파편화하여 끊임없이 관객에게 상기하려는 것은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이것은 소비주의적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극단적 식민 산업을 넘어선다. 영화는 소비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이자 인식의 변형이며 곧 시간과 공간이다.
아나 바즈, 바바라 베르가마쉬 노바에스, 〈포스트 식민주의 영화 풍경―아나 바즈와의 대화〉, 《예술에서의 과학과 기술》, 제13호, 3호(2021), p. 153
실험영화는 영화의 미래를 향하기 때문에 영화의 기원으로 되돌아간다. 영화가 그 자체의 구조를 해체, 파괴, 파편화하여 끊임없이 관객에게 상기하려는 것은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다. 이것은 소비주의적 형태의 엔터테인먼트, 소위 상업영화라 불리는 극단적 식민 산업을 넘어선다. 영화는 소비가 아니라 세계에 대한 인식이자 인식의 변형이며 곧 시간과 공간이다.
아나 바즈, 바바라 베르가마쉬 노바에스, 〈포스트 식민주의 영화 풍경―아나 바즈와의 대화〉, 《예술에서의 과학과 기술》, 제13호, 3호(2021), p. 153
내 이름이 장례 안내문 유가족란에 쓰여있었다. 어떤 말은 경험해서만이 뜻이 온전해진다. 유가족이란 장례식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눈물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서 내게 인사를 했다. 나는 모르는 순간의 당신이 그에게 남아있다. 조각들에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히라야마는 생활에 익숙하게 움직인다. 일과 중 발생하는 크고 작은 균열은 그가 필름 카메라로 포착하는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닮았다. 비슷한 날들은 결코 같은 날이 아니다. 그의 말처럼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 수행적 삶은 곧 장소에 녹아든 삶이라 떠도는 중에 보기에 무척 부러웠다.
언니는 회화가 빨래 같은 거라 했다. 편집된 시간을 모으면 어떤 궤적이 보인다고. 이미 그려진 이미지에 천천히 뜻이 맺히기도 한다고 했다. 마시다 만 밀키스와 피우다 만 연초가 종이컵에서 만났다.
당신과 나는 아주 오랜만이다. 찰랑이는 흰 벽지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마주 있다. 아래, 발목이 보일 만큼의 틈이 있다. 장난스레 당신의 발끝에 내 발끝을 갖다댄다. 놀랍지 않다. 당신은 내가 나임을 알아차린다. 놀랍지 않다. 슬쩍 가파른 입꼬리. 나눈 시간은 나누지 않은 시간을 초월한다. 다행이라 여긴다.
특이하게 요즘의 밤은 아침보다 저를 더 낙천적이게 하고, 그래서 막연히 평화가 다가오고 있다 느끼는지 모르겠어요.(...) 좋은 날에 만나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싶고, 말을 쏟아내기도 하고, 갑자기 멈춰 침묵을 즐기고도 싶고 그래요. 오랜만이라 미묘하게 달라진 저를 알아채 주고 그럼에도 그대로인 저 또한 발견해 주세요.
문장을 좋아하냐는 말을, 선영에게 어떤 말로 다르게 말할 수 있을까요.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제가 선영을 잘 모르나 봐요. ‘문장’을 ‘책’으로 바꿀 수도 있겠지만, ‘책을 좋아하세요?’는 너무 뭉툭하게 느껴져요. 다음에 만나면 선영이 어느 순간이 와도 결코 버릴 수 없는 걸 알려주세요. 미세한 차이를 커다란 차이로 느끼는 어떤 것을.
메리 올리버는 삶의 대부분을 자연 속에 살며 작업한 시인이야. 산문집 『긴 호흡』에서 풍경을 그려내는 사색 틈틈이 예술에 대해 말하는데(여기에서의 예술은 아마 시겠지.) 문장에서 보이는, 환상이나 우러름 없는 경외와 애정이 좋더라. 나는 마음의 건강을 향하는 애정이 예술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태도에 늘 감명받나 봐. 지난겨울에 읽은 책 중에 제일 좋았어. 나도 항상 선영의 안녕을 바라. 이미지, 글, 문장, 시간, 디자인⋯.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것이 마음의 행복을 향해 있기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